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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북의 인기를 통해 본 소비자 가치

IOT전략연구소 2008. 12. 30.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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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비즈니스 인사이트의 위클리 포커스에 실린 기사입니다.
공감되는 바가 많아, 장문이지만 전문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넷북의 인기를 통해 본 소비자 가치
김영건 (
ykkim@lgeri.com)

바야흐로 불황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진정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과 소비자 가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최근 PC산업에서 주목받고 있는 넷북을 통해 소비자가 가치를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본다.

 
미국 발 금융위기의 여파가 실물경제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침에 따라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소비자의 가벼워진 지갑을 열기 위해 기업들은 너도나도 가격을 할인하거나 끼워팔기, 또는 각종 경품을 내걸고 있다. 불황기에 대처하는 보통 기업들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과연 이처럼 가격을 내리고,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경품을 내거는 판촉행사를 하는 것이 진정 소비자 가치를 높이는 것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이다. 가격 인하는 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동반하므로 장기적 관점에서 결코 바람직한 접근이 아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진정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과 소비자 가치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PC 시장의 새로운 트랜드로 부상하고 있는 넷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넷북’ 혹은 ‘미니노트북’이라 불리는 이 IT 제품의 정의는 업체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7~10인치의 디스플레이를 갖추고 기본적 성능을 위한 CPU와 운영체제를 갖춘 노트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넷북을 혹자는 와이브로 인터넷 환경과 맞물려 가격이 저렴해 불황기에 많이 팔리는 대표적인 히트 상품 중 하나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넷북 시장 성장의 동인은 그 동안 숨겨져 왔던 소비자 가치의 발견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넷북을 둘러싼 소비자와 공급자 간의 시각차를 살펴보고, 넷북을 통해 소비자가 진정으로 가치를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본다. 
 
넷북의 출현과 소비자 가치
 
2007년 말, 대만의 PC 제조업체인 Asus가 처음으로 EeePC를 출시하면서 시작된 넷북 시장은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과 함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각종 포털과 블로그를 통해 초기 구매자들이 전하는 넷북 사용기가 확산됨에 따라 넷북 구매에 따른 불확실성이 점차 해소되고 있다. 또 와이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동통신사들이 결합상품을 통해 보조금을 지급함에 따라 소비자들이 넷북을 통해 얻는 효용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 조사 기관인 IDC는 11월 이례적으로 지난 5월에 내놓았던 넷북의 시장규모 전망치를 수정하여 이런 빠른 성장세를 반영하였다. IDC에 따르면, 넷북 시장은 올해 물량기준으로 1,140만 대에 이를 전망이며, 2012년에는 4,220만 대에 달해 전체 노트북 시장의 14%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그림 1> 참조). 
 
하지만 PC 관련 업계는 이런 넷북의 폭발적인 수요 증가를 마냥 반가워하는 모습은 아니다. 넷북의 CPU로 주로 쓰이고 있는 아톰 칩을 공급하는 인텔도 그렇고, Asus 이후 뒤늦게 뛰어들기 시작한 주요 PC 제조업체들도 볼멘소리를 하며 어쩔 수 없이 시장 흐름에 따라가고 있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이런 PC 관련 제조업체들은 당초 넷북이 기존의 노트북 시장과 별개 시장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했지만, 지금의 모습은 기존 노트북 시장을 일부 잠식하는 양상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IDC 보고서는 미니노트북의 디스플레이 크기가 7인치에서 10인치로 확대되었듯이 12인치로 확대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선진 시장에서의 일부 소비자들이 기존 PC나 노트북을 업그레이드하기 보다는 넷북으로 교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 잠식 효과를 감소시키기 위해 인텔의 경우 지난 10월 자사의 공식 기술 블로그를 통해 넷북은 주로 인터넷 이용을 위한 기초적인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듀얼코어나 센트리노 칩이 제공하는 풍부한 경험을 알리는데 발벗고 나섰다. PC 제조업체의 입장에서도 판매가격이 4~500 달러로 기존 노트북의 절반에 불과한 넷북은 수익성 측면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PC 제조업체들은 넷북의 출현으로 소비자들이 노트북에 대한 기대가격이 과거보다 더욱 빠르게 하락하는 상황을 무엇보다 우려하고 있다. 데스크탑의 성장 정체와 낮은 마진을 노트북 시장에서 보전해 온 PC 제조업체들의 입장에서는 작금의 현실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넷북을 둘러싼 소비자와 공급자의 이런 상반된 반응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혹시 제조사들은 이익에 눈이 가려 진정한 고객 가치 발굴을 게을리하는 것은 아닐까?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넷북의 인기는 소비자 가치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 고유 기능에 집중
 
우선 넷북은 노트북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인 ‘휴대성’을 파격적인 가격에 제시함으로써 소비자에게 기존 노트북이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던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노트북은 본래 실내에서 사용하는 데스크탑 PC를 공간의 제약 없이 밖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IT 기기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 동안 진정한 ‘휴대성’을 누리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과거 후지쯔나 소니의 10, 11인치 대의 미니노트북라 할 수 있는 노트북들은 기존 노트북의 성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소형화했기 때문에 굉장히 고가였다. 동일한 성능 하에 노트북은 가벼워질수록, 작아질수록 가격이 높아지는 구조의 PC 제조업체 방정식을 강요받아 온 것이다.
 
반면 넷북은 이런 기존 노트북의 성능을 과감히 포기하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인터넷과 문서작업 그리고 간단한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수행하는 수준인 3~4년 전 노트북 성능으로 대폭 낮춘 것이다. 그 대신 소비 전력이 낮은 아톰 칩을 장착한 넷북은 기존 노트북보다 2배인 4~7시간 정도의 배터리 수명을 자랑하면서 무게는 1Kg 안팎에 불과해 이동성은 극대화되었다. 저가이지만, 오히려 기존 프리미엄 미니노트북보다도 뛰어난 휴대성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넷북은 노트북 소비자들 중 휴대성에 높은 가치를 두고 이를 위해 성능을 희생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에게 분명한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가치를 느끼는 요소가 결합된 넷북에 대해 충분히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본 기능과 속성에 집중함으로써 숨겨졌던 소비자의 가치를 올리는 경우는 주변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LG전자의 와인폰의 경우, 넓은 디스플레이와 자판 그리고 문자 읽어주기 기능을 통해 통화, 메시지 송수신과 같은 휴대폰 기본 기능은 강화하면서 복잡한 기능은 과감히 생략함으로써 기본 기능을 중시하는 장년층과 단순함을 선호하는 고객층에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불황기일수록 소비자 관점에서 고객이 진정한 가치를 두는 본연의 기능이 무엇이고, 불필요한 거품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 트레이딩 업 심리를 활용
 
넷북은 트레이딩 업/다운 트랜드와 맞물려 소비자에게 감성적인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성공 하고 있다. 컨설팅 회사인 BCG는 보고서(2008.9)를 통해,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 양극화 경향을 설명하는 Trading Up/Down 트랜드가 최근 불황기에 더욱 확산될 것이라 말한다. 트레이딩 업/다운이란, 소비자가 가치를 느끼는 것은 비싸도 더 좋은 제품을 사려 하고, 큰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범용 품목은 최대한 싸게 구입하려는 트랜드를 말한다. 
 
넷북의 인기배경으로 많은 이들이 ‘가격’을 꼽는다. 하지만 지금도 넷북과 가격이 비슷한 저가 노트북들이 시장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가격 외에도 넷북을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BCG의 조사에 따르면, PC는 대표적인 트레이딩 업 품목이다(<표> 참조). 즉 PC는 소비자가 가치를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가격이 비싸도 기꺼이 구매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품목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넷북은 와이브로 환경과 맞물려 모바일 인터넷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편리함을 제공한다. 그리고 작고 주변의 시선을 끄는 디자인을 갖춤으로써 사용자를 돋보이게 하는 우월감까지 제공한다. 넷북은 기존의 저가 노트북이 주는 ‘가격으로 승부하는 열등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마치 소니의 바이오(VAIO) 노트북이 제공하는 특별함과 같은 감성적 가치까지 제공하기 때문에 인기를 끄는 것이다.  
 
하바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 12월 최신호는 불황기에 가격 할인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가격 할인은 궁극적으로 제품의 가치에 대한 회의와 브랜드 손상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넷북을 통해 알 수 있듯 소비자들은 단순히 저가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여타 저가 MP3를 놔두고 이보다 비싸면서도 디스플레이도 없는 아이팟 셔플을 선택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사례는 아이튠스가 제공하는 실질적인 가치와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애플 매니아임을 드러내는 감성적 가치를 제공하는 트래이딩 업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불황 속에서 소비자가 가치를 느끼는 감성적 가치를 발굴해 트레이딩 업 트랜드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 소비자에게 익숙한 사용 경험 
 
넷북은 소비자의 과거 경험을 존중함으로써 UMPC(울트라 모바일 PC)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 최근 IT 기기에 불어오고 있는 하이터치 바람은 인간의 오감(五感)을 극대화하여 UI(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개선함으로써 소비자 사용 편의성을 높이는 역할을 위한 것이지만, 때로는 소비자에게 익숙한 환경과 경험이 더 가치를 준다는 것을 넷북을 통해 알 수 있다.  
 
불과 1년 전, 넷북과 비슷한 컨셉으로 출시되었던 UMPC(울트라 모바일 PC)는 넷북에 비해 시장에서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동성을 높이기 위해 소비자가 기존 노트북에 있어 가지고 있던 사용 방식과 인식을 크게 벗어 낫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익숙한 키보드 같은 입력장치를 없애고 터치 방식을 활용한 가상 키보드나 필기체 인식 방식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적용했으나 이는 오히려 소비자에게 불편함을 안겨 주었다. 또한 전면에 디스플레이를 배치한 UMPC의 모습은 기존 노트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UMPC에 대한 거부감을 초래했다. 이에 반해 넷북은 소비자에게 익숙한 입력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런 UMPC의 단점을 개선하여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주위를 살펴 보면 소비자의 이런 익숙한 경험에 가치를 두어 큰 성공을 거두는 제품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이를 경시해 적지 않은 저항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게임 콘솔 닌텐도 위는, 동작 센서와 리모콘을 활용, 실제 소비자가 스포츠 경기를 통해 가지고 있는 익숙한 경험을 최대한 비슷하게 게임 속에서도 재현할 수 있게 해 재미를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 초기 드럼 세탁기는 일반 세탁기에 익숙한 소비자의 적지 않은 저항에 직면했다. 물을 가득 채워 원심력에 의해 때가 빠지는 것을 직접 보며 확인해 왔던 소비자는 적은 물과 낙차를 이용하는 드럼 세탁기의 방식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드럼 세탁기 업체는 물 사용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창을 넓히는 방식으로 이를 개선했다. 
 
공급자 마인드에서 벗어나야
 
지난 11월, 일본 경제 신문 Nikkei지는 일본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소비자 설문 결과를 소개했다. 지금 같은 불황기에 어떤 가전 품목 지출을 가장 먼저 줄일 것인지, 그리고 제품의 어떤 속성에 가장 가치를 두는가를 묻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결과를 보면 소비자들은 기본적인 성능과 에너지 효율, 사용 편리성, 그리고 디자인 순으로 중요한 속성을 꼽았다. 그리고 LCD, PDP TV와 같은 평판 TV와 PC를 이런 불황기에도 가장 구매하고 싶은 전자제품으로 선택했다(<그림 2> 참조). 기본 성능에 충실한 저렴한 상품이 많이 출시되었기 때문에 FPD와 PC의 경우 소비 심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불황 속에서도 소비자가 가치를 느끼는 제품에는 기꺼이 지갑을 열 의사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소비자가 가치를 느끼는 부분은 위에서 언급했듯 제품 본연의 기능, 트래이딩 업을 통한 소비자 감성 가치, 그리고 소비자의 익숙한 사용 경험 등과 같은 것이다. 
 
기술적 성숙도가 높아지고,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제품 단위의 차별화는 점점 어려워 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더구나 넷북의 사례를 통해 봤듯이 공급자 마인드에서 생각할 수 있는 차별화가 진정 소비자의 가치를 높이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 동안 제조사들이 경쟁과 차별화의 늪에 빠진 결과 소비자가 진정한 가치를 느끼는 제품과 기능 그리고 가치를 매기는 기준이 제조업체가 생각하는 그것들과 상당한 괴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새삼 가치소비가 강화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철저히 자신이 가치를 느끼는 부분에만 비용을 지불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IT 산업에서 추구해 왔던 기술선도 제품, 단순 저가 제품이 지금까지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주었는지 냉철하게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주어진 기술과 경쟁사 제품 분석을 통해 어정쩡한 기능을 조합한 상품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공급자의 논리에 의해 그 동안 외면되었던 소비자 가치의 재발굴을 통해 넷북과 같은 새로운 시장을 키우는 전략이 어정쩡한 제품을 가격 할인을 통해 안간힘을 쓰며 팔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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